최근 들어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 스스로 정체되어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회복기라고 생각했다. 지난 1년 동안 꽤 빡세게 일했고, 많은 기여를 했고, 나름대로 계속 달려왔다. 그러니 이제는 잠깐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연애도 시작했으니 일만이 아니라 삶에도 조금 더 집중해보자고.
그런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는 왜 정체되어 있을까? 애초에 정말 정체된 것이 맞을까?
재미있는 것은, 막연하던 감정을 “정체감”이라는 말로 언어화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정체되어 있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정체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할까.
나는 정말 정체되어 있는가
예전의 나는 삶의 많은 시간을 개발에 투자했다. 더 많이 기여하고 싶었고, 더 많이 인정받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업무량과 생산성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반면 최근 1년 동안은 개발 외적인 삶의 비중이 커졌다. 연애를 시작했고, 책을 읽었고, 복싱을 했고, 게임도 했다. 일 외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면서 삶은 더 건강해졌고, 더 지속가능해졌다고 느낀다.
이 변화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요했던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발자로서의 실력은 확실히 정체된 것 같다.
예전에는 링크드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블로그 글쓰기 모임 등에 참여하며 서울·경기권 개발자들과 접점을 만들려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업무에서도 답답함이 있다. 내가 개발에 참여한 기능들이 실제 지표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입사 초반에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들이 분명히 지표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했고,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 기대했던 만큼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고, 믿고 의지하던 팀원들이 조금씩 회사를 떠나는 모습도 보았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더 노력해야 할 이유를 조금씩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회복기가 길어지면서 관성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말하는 “실력”은 무엇인가
그런데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내가 말하는 “실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나는 지금 무엇이 답답해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지금까지의 나는 주로 작업량과 생산성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더 빠르게 만들고, 더 많이 처리하고, 더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다음 단계의 성장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단순히 구현 속도나 작업량만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설계하는 능력, 제품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 협업 방식을 개선하는 능력, 제품 감각, 리더십 같은 것들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닐까.
결국 질문은 여기로 이어진다.
나는 앞으로 어떤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할 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의 재설정인 것 같다.
앞으로 1년 동안 나는 어떤 엔지니어로 보이고 싶은가. 무엇에 집중해야 나 자신에게도, 팀에게도 의미 있는 성장을 만들 수 있을까.
최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AI 트렌드를 적절히 읽고 팀에 잘 도입하고 싶다. 센디 개발자들이 어디 가서 “AI를 꽤 잘 쓰는 팀”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업무 방식과 개발 생산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SEO와 GEO 영역에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고 싶다. 앞으로 사용자가 서비스를 발견하는 방식은 계속 변할 것이고, 그 변화에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단순히 “구현을 빠르게 많이 하는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 않다. 코드 품질, 성능, DX, 아키텍처 기준을 끌어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나를 증명하고 싶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되돌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의 밸런스를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개발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일 외적인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나를 더 오래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다시 손에 쥐려는 무모함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우선순위 배정이다.
예전처럼 무작정 더 많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정말 성장하고 싶은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시간을 쓰는 것. 그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방식인 것 같다.
작게 다시 시작하기
거창한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작게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출근 후 스탠드업 미팅을 제외한 30분 동안은 구독해둔 신규 기술 아티클을 읽어보려고 한다. 밀린 아티클도 하나씩 처리해보려 한다. 퇴근 10분 전에는 데일리 노트를 정리하면서 오늘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놓쳤고, 내일은 무엇에 집중할지 기록해보려 한다.
링크드인 알고리즘도 다시 정리하고 싶다. 어느 순간 SEO 관련 콘텐츠 위주로 점철되어버린 피드를 조금씩 되돌려, 다시 프론트엔드와 제품 개발에 관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서울·경기권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은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다시 알고 싶다.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FECONF 2026 발표도 준비해보고 싶다. 발표를 목표로 삼는 것은 단순히 무대에 서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깊게 고민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정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감은 불편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방향을 다시 묻는 신호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멈춰 있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시 움직여보려 한다.
예전과 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괜찮다.
이제는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성장하면 된다.
'커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팀스파르타 - 면접 탈락 후기 (1) | 2023.09.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