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마라톤에 참여하고 왔다. 10km일 뿐이긴 하지만 러닝과는 일절 관계없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엄청나게 긴 거리였기 때문에, 완주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동기는 별거 없다. 작년 말쯤 사내 러닝동호회에서 벚꽃이 만개한 날에 마라톤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되게 낭만적일 것 같다고 생각(착각)했다. 마침 입사 동기들도 관심있어 하길래 같이 참가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무직 체력으로 하프 마라톤을 뛰기는 부담스러워서 10km로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마라톤을 신청하고 나서 그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1년째 사무직 생활을 유지 중인 내가 10km를 완주할 수 있었던 건, 한 달 전부터 복싱을 시작한게 큰 것 같다. 헬스보다 유산소의 비중이 훨씬 높은 복싱 덕택에 그나마 신체 컨디션과 체력을 끌어올린 채로 마라톤을 뛸 수 있었고, 결국 완주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라톤이 처음이다 보니 페이스 분배 같은건 개나주고 막 달렸다. 초반 0.5km 까지는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5분 30초 페이스로 달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조금 걷고 다시 달리고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지 싶은데 달릴 때는 남들 추월하려고 빨리 달리다가 금방 힘들어져서 또 걷고, 체력이 돌아오면 다시 추월하려고 빨리 달리고를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7분 18초의 페이스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마라톤 중간중간 걸어서 좋았던 점이 있는데, 만개한 벚꽃을 나긋이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막 달릴 때는 몰랐는데 보문호를 둘러싸고 펼쳐진 벚꽃나무 숲을 바라보는 일은 꽤나 기분이 좋았다. 평소 업무나 성장에 대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항상 머리가 복잡했는데, 마라톤을 달리는 동안에는 정말 모든 잡생각을 떨쳐내고 달릴 수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어서 딴생각을 못했던 것도 맞고..
지금 나는 카페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근육통은 익숙해서 별 문제는 없는데, 달릴 때 오른쪽 발로 너무 힘차게 박찼던게 문제인지 오른쪽 무릎 관절이 조금 아프다. 그리고 고관절도 조금 땡기는 느낌. 특히 숨쉬기가 힘들어서 입으로 숨을 쉬었더니 아직도 목에 좀 가래낀거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최선의 고통"이라는 책이 있다. "왜 사람들은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끝끝내 오르고,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전쟁터에 자원입대하고, 타인을 돕는 일에 평생을 던지는가"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달리는 도중에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듯이 괴로웠지만, 남이 시켜서 한게 아닌 내가 선택한 고통이었기에 끝까지 감내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마라톤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하프는 아직 무리이고 10km에 익숙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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